사방이 포위된 후 항왕은 말을 타고 그 뒤를 이어 말을 탄 장병 800여 명이 남쪽으로 달려가 회하(淮河)를 건넜는데 그 수가 1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는 은릉에 있을 때 길을 잃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선한 싸움을 벌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오강에 이르렀을 때 오강관장이 그를 설득하여 강을 건너게 했다. 그러나 항우는 강동의 장로들을 보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여 그의 군마를 관장에게 넘겨 주고 수백 명의 한족 추격자들을 죽인 후 칼을 들고 자결하였다. 기병들은 서로를 짓밟고 항왕의 시신을 놓고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