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선은 선과 불교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맹자'의 뜻인 '도피하는 모는 양에게 돌아가고, 도피하는 양은 유교로 돌아간다'라는 뜻이다. 어떤 이념적 명제로부터의 일탈을 표현하기 위해 '도망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랫동안 유자들에 의해 사용되어 온 유명한 것으로 소위 '도망하는 모'와 '도망하는 양'이 있다. 주자는 맹자가 모양을 떠나 유교에 복귀하는 관계를 이야기한 이유는 "양과 모는 둘 다 이단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모의 이론은 특히 위선적이고 비인도적이다"라고 설명했다. 하기 어렵기 때문에 맹자가 말한 것은 양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묵양지로부터의 도피란 묵가와 양지를 버리고 유교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며, 이는 '악을 버리고 의로 돌아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후에 불교의 가르침에 입문하여 결국 불교를 버리고 유교로 돌아간 유자들을 '탈선하여 유교로 돌아가고, 진리를 구하려고 거짓되느니라'라고 하였느니라. 탈선', 즉 선에서 탈피하고 유교로 돌아간 것이다.
장기간 단식을 하지만 반면에 선불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술취한 꿈에서 선불교에 반대되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을 뜻한다. 두보(Du Fu)의 당나라 시 <팔선인의 노래(八선인의 노래)>에는 “소(蘇)와 진창재(晉長船)는 부처를 수놓기 전에 술에 취해 선(禪)을 떠나는 것을 좋아했다”고 나중에 주석이 있다: “선(禪)에서 벗어나는 것은 구름이 달아나는 것과 같다.” 먹이나 양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술에 취해 가르침을 거역하니 후세들이 불교 수행을 선 수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누가 금인을 풀고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평화롭게 지내기 쉽다." 고대 성리학, 내단, 선불교가 큰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부 광신자들은 성리학에 반대하는 만큼 선불교에도 반대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탈선'이라고 부르거나 자칭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사람들.
예를 들어 주희는 어렸을 때 “선(禪)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했고, “불교와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며 유교를 읽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희가 결국 내린 것은 선택이었다. 선(禪)에서 벗어나(떠나고) 유교로 돌아가다. 그의 시가 말했듯이 "선불교에서 서두르지 말고, 지역의 한가운데에 머 무르십시오." 따라서 이러한 불교 안팎의 학습 여정에서는 적어도 수당에서 송에 이르기까지. 원나라와 불교를 기피하고 선불교에서 도피한 사람들을 '탈선'이라 불렀다.
후선종에서는 탈선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유교 사상을 혼란시키기 위해 탈선을 불교 공부로 묘사했다. 도탈선을 불교학으로 기술하는 용법은 비교적 후기 용법으로서 명나라 말기 이후에 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