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의 아들 이세민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재능 있는 오제천은 그의 곁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태종의 아들 이사가 아버지를 병문안하러 왔습니다. 오제천은 이사를 유혹해 장래 계획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리지와 우제천은 애매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나중에 당나라 태종 황제가 죽은 후 당시 당나라의 제도에 따라 하렘에 자식이 없는 첩은 감예사에 가서 머리를 잘라야 했습니다. 당 태종 황제 때 12년 동안 오채련으로 지냈던 오제천은 아이가 없어 비구니가 되기 위해 절에 가야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제련과 당태종 이지는 애매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지는 한동안 우제련을 잊지 못해 종종 하렘에 와서 우제련을 방문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우제천은 리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리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재능을 바탕으로 리지에 대한 많은 사랑시를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인 '여의니앙'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주희는 생각에 잠겨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눈물을 흘리고 석류 치마를 풀어줄 거라고 믿지 않나요? 이 깊은 사랑의 시는 나중에 우제천을 더욱 사랑하게 된 리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당시 당나라 황제 이지는 후궁 소수페이와 황후를 궁궐에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지는 구름처럼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후궁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오제천은 이 여인들 사이에서 자신을 떠올리게 해야만 리자를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야만 절을 떠나 궁궐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제천은 이자의 목숨을 구하는 지푸라기를 붙잡고 이자를 감동시키기 위해 애틋한 시를 썼습니다.
이 감상적인 구절을 통해 당시 우제천이 리자를 좋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리지는 우제천의 진심에 부응하여 우제천을 궁으로 불러들여 후궁으로 삼았고, 곧 이홍이라는 아들을 낳아 이등 조이(趙夷)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잔인하고 단호한 우제천은 원래 온화한 면모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