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장군, 경주의 암살자, 초중 장군 등을 연이어 역임한 양조와 판안의 아버지는 가족 친구였습니다. 양조의 딸은 판안과 비슷한 또래로 외모가 빼어나고 덕이 있고 조용했습니다. 양조는 많은 고민 끝에 딸을 범안과 약혼했습니다. 판안과 양조가 결혼한 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일 뿐만 아니라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고 매우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판안은 아내 양에게 열광했습니다. 원강 8년(298년) 양이 죽자 판안은 상심에 빠져 죽은 아내에 대한 무한한 추억에 잠겼습니다. 서기 299년, 판안은 고향 중모에서 아내의 장례를 마치고 부임지로 떠나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무덤에 와서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그는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그는 세 편의 추모시를 썼는데, "봄바람이 오고 처마에서 아침 이슬이 뚝뚝 떨어지네. 잠을 잊으면 근심이 쌓인다.""라고 썼습니다. 영원의 긴 위로를 받으면 가슴에 눈물 자국이 남지 않습니다. 가슴을 만지면 안도감을 느끼고 슬픔이 시작됩니다. 잠은 생생하고 그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이 시는 진솔하고 깊고 감동적이고 진심이 담겨 있으며, 남편과 아내 사이의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의 깊이로 가득 차 있어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증거:
판안은 12살에 아내 양과 약혼했습니다. 결혼 후 20년 넘게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깊은 애착을 가졌습니다. 아내가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후에도 판안은 아내를 잊지 못했고, 많은 시를 통해 고인이 된 아내에게 무한한 애도를 보냈습니다. 그중에서도 세 편의 추모시가 가장 영향력이 컸습니다. (애도시는 역사상 유명한데, 세 편의 애도시 모두 아내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대 사람들이 추모시를 아내를 애도하는 시로 규정했다는 사실은 그의 추모시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추모시에서 광어를 부부 관계의 은유로 사용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