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수춘 후손들의 추억

1948년 초, 당시 북경 시장이었던 허쓰위안 씨는 대학생들에게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논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전쟁, 산둥에 리관(리씨를 지칭함)이 있었다. 1939년 말 보위대를 이끌고 일본군을 막아 이동하던 중 한 마을에 포위됐다. 돌파를 위한 치열한 전투 끝에 남편과 그의 경비병들은 항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농장 구내로 물러났습니다. 경비병들과 함께 수류탄을 챙겨 일본군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한 중년 여성이 집에서 뛰쳐나왔고, 그녀는 남편이 재난 구호 식량을 나눠주러 마을에 온 리 소장임을 알아보고 필사적으로 끌어당겼다. 그 남편을 집에 들어가서 강 위에 눕게 하고 올라가서 이불을 덮으라. 일본군과 통역자들이 급히 병원으로 달려오자 그녀는 그녀를 말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남자가 장티푸스에 걸려 곧 죽을 것입니다. 일본군은 집에 들어가 강 위에 누군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장티푸스에 걸릴까 봐 이불을 들지 않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신사는 마침내 탈출했다.

2005년 6월, 항일전쟁 승전 60주년을 앞둔 어느 날, 남대성일보 기자는 항일팔로전쟁 참전용사 다이룬성(大runsheng)을 인터뷰했다. 육군(1955년 소장으로 진급, 1988년 동중국해 함대 정치위원으로 퇴임) 89세의 장군은 1939년 8월 1일 팔로군이 일본을 상대로 벌인 '량산전멸전투'(이 전투는 팔로군 본부가 '모범전투'로 칭찬함)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투가 끝난 후 전장을 청소하던 중에 *** 일본군 400명, 괴뢰군 200명 이상, 일본군 23명이 포로가 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국민당 루시 수용소 소장 리수춘도 축하 편지를 보내어 보냈습니다. 우리 병사들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500위안을 보냈습니다. 리 국장은 장개석에게 전보를 보내 115사단이 전투를 위해 산둥으로 이동했다는 내용을 전했습니다. 적군은 115사단을 산둥에 남겨둘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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