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기 세 가지 사건 중 동공홍약 사건의 미스터리

광종이 왕위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늘 두려움에 떨며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에도 그를 죽이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악서 사건과 벼락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명과 주창뤄는 장난을 쳤습니다. 황위에 오른 지 나흘 만에 갑자기 병에 걸렸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황제가 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 홍묘의 관리들이 먹은 붉은 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나라 말기 3대 사건 중 하나인 홍약 사건입니다. 광종 황제는 왜 갑자기 병에 걸렸을까요? 홍약은 어떤 약인가요? 홍약 사건에 숨겨진 의도가 있나요? 광종이 즉위 후 병에 걸린 이유는 명나라 역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수도에는 전직 귀족 후궁이 광종의 후궁 이씨와 결탁해 8명의 미녀를 황제에게 바쳐 황제가 방탕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결과 환관이었던 쿠이는 설사를 유발할 수 있는 대황 완하제를 황제에게 몰래 가져다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광종은 하루에 서른 번에서 마흔 번 설사를 하며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병을 앓았고, 훗날 사망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광종 주창루는 왕위에 오르기 전 오랜 기간 공포에 시달렸기 때문에 위협에서 벗어난 후 쾌락에 대한 욕망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39세의 새 황제는 아버지가 남긴 후궁을 빼앗고 동궁에 있던 기존 후궁 외에 새로운 후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주창루오는 왕위를 물려받은 지 며칠 만에 여성에 대한 욕망에 빠져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역사책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관련 사료를 통해 광종의 병이 실제로 방종과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명나라 말기 주창루를 황태자로 세우는 데는 실패했지만, 명나라 삼족과 얽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창루가 왕위를 계승하기 전에 정귀비는 이미 오랫동안 배척받던 이 태자가 성에 욕심이 많고 미인계를 이용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환관인 구이에게 광종을 모시도록 선동하고 동방박사 여덟 명을 광종에게 바쳤습니다. 이 계략은 성공했고 광종은 곧 자신을 해치려는 여인이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또한 정귀비에게 고마움을 느낀 광종은 의례부에 그녀를 서태후로 만들기 위한 협상을 요청했습니다. 이때 또 다른 여인 리가 개입했습니다. 서안은 명나라 말기의 명물이었습니다. 명나라 말기에는 궁궐의 하녀를 쉬안시라고 불렀습니다. 리쉬안은 사랑을 받고 아들을 낳아 왕비가 되기를 꿈꿨어요.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리씨와 결탁했습니다. 대신들은 곧 두 사람이 서로 공모하여 주창뢰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광종이 병에 걸렸을 때 곧 누군가 황제에게 교훈을 주었습니다. 군인 양련이 가장 먼저 황위에 올라 구원의 마약 남용 범죄로 황제가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주장했고, 황후가 되고 싶어 했던 정귀비에 대해서는 황제 자신이 친어머니와 생모가 모두 있었다고 주장하며 황위에 올랐습니다. 정귀비가 황후후가 된다면 생모와 생모를 어떻게 모시겠습니까? 그 결과 광종은 3일 후 대신들을 소집해 구소호를 해임하고 서태후를 황후로 삼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귀페이를 비롯한 신하들의 공격은 주창루오의 방종을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 명사 - 주자무 전기》에 따르면 8월 26일, 고위 관리인 주자무는 황제에게 지나치게 탐닉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황제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장남에게 그 소문을 믿지 말라고 궁궐에 알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황제의 방종이 잘 알려진 일이었고 광종 자신이 황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소문을 은폐하려고 노력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결국 방종의 심각한 결과는 이미 나타났고 광종의 정신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고, 8월 29일 주창루는 자신의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을보고 대신들을 불러 사후 침전 건설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대신들은 황제에게 너무 늦지 않도록 가능한 한 빨리 태자의 이름을 결정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날 리라는 관리가 사원에서 홍페락을 개최한 것도 이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