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최고의 관리는 누구였나요? 사형 집행장에 백성들이 자비를 구하러 갔을 때 사형 집행관은 그들에게 손을 얹는 것을 참지 못하고 기꺼이 죽음에 동행했습니다.

명나라의 가장 유명한 관리인 위첸은 일곱 자로 된 시 '라임에 대한 찬가'를 작곡한 사람입니다. 그는 충성스럽고 정직했습니다. 라임에 대한 찬가는 그의 성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잔인한 사형 집행자가 기꺼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그를 위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강직한 사람이 왜 죽었을까요? 그것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로 한 그의 결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 명나라 황제 영종이 건을 그토록 미워한 것은 바로 이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명나라 영종 재위 시절, 몽골 귀족들도 많은 군대를 보내 중앙 평원을 침략하려 했습니다. 당시 영종은 자신의 기분이 너무 좋아서 "직접 원정을 떠나라"는 신하 왕전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친정'이란 황제가 직접 최전선에 나가 군대를 지휘하며 적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영종은 통보에서 몽골군의 공격을 받아 군대가 완전히 전멸했습니다. 그는 몽골군에게 체포되었고, 지도자도 없고 패배한 그의 대신들은 먼저 화친을 맺고 적에게 항복할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유건만이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원래의 명성을 살려 나라의 군대를 동원하고 군대를 건설하고 식량을 비축하여 원흉인 왕진을 처벌하고 영종의 동생인 대종을 새 황제로 세우고 성문 밖에서 인질로 잡혀간 영종 전 황제의 죽음도 무시한 채 눈물을 흘리며 싸우고 갑옷을 입고 적을 쳐서 마침내 제1군을 물리쳤습니다.

먼저 전 황제를 인질로 잡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영종을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영종은 다시 황제가 되고 싶었지만 형과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동생 대종이 병에 걸리자 환관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전임 황제를 황위에 복귀시켰어요. 왕위를 되찾은 영종은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없었던 유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백성들이 아무리 그를 사랑해도 강제로 참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