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방사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들은 곧 소동포와 그의 고전작' 적벽부',' 낭자한 말투' 를 떠올릴 것이다. 소동파가 단어에 기여한 공로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당시를 언급하자마자' 송사' 가 불쑥 튀어나와 소동포가 당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중국 문단의 쌍성이 되었다.
예로부터 가을은 시인의 눈에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이때 모든 것이 복잡함에서 쇠퇴, 집결에서 분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소동포의 심정도 예외는 아니다. 어젯밤, 한차례의 무정한 가을바람이 오동림에 불어와 오동잎에 서리가 한 층 맺혔다. 이때 소동파는 조용히 오동나무 앞에 앉아 자신이 늙었다고 외치며 젊지 않았다. 그의 노쇠한 얼굴은 정말 가을바람에 보이고 싶지 않다. 이때 가을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며 소동파에게 왜 이러는지,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것 같다. 소동파는 대답하지 않고, 단지 손으로 공중에 무언가를 쓰거나, 당신의 청춘이나 당신의 정치적 고민을 계속 쓰고 있을 뿐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인생명언)
에이, 그 사람 말고는 사람이 늙으면 가끔 술을 좀 마시면 취한다. 그가 자신을 돌보려 할 때, 여전히 병이 나고, 때로는 게으름을 피운다. 이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왜 그렇게 신경 써요? 소동파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에 왔다. 그는 이 떨어지는 꽃을 보고 눈처럼 손으로 주워 자신이 좀 늙었다는 것을 한탄하고 또 많은 병을 더했다. 뒤를 돌아보니 많은 친척과 친구들이 곁에 없었고, 그의 눈은 촛불의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요정처럼 공중에서 날며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했다. (데이비드 아셀, Northern Exposure (미국 TV 드라마), 가족명언)
그래서 가을바람에 직면하여 그는 감상에 탐닉할 수 있고, 소동파는 시로 자신의 우울과 불쾌함을 표현하고 해소하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