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종은 서예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 서예를 '박금서'라고 불렀으나,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부패하여 역신을 임명하여 나라를 토벌하게 만들었다. 또한 포로가 되어 오국성 진방으로 끌려가 해외에서 사망하였다. 지위가 제일 높고 품성이 열악하여 재상을 모시고 일류의 서예를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그의 서예는 부패하고 무능하여 농민들이 득세하였다. 반란이 일어나 진국이 남침하고, 회종은 왕위를 물려받은 뒤 재상에서 해임되었다. 비록 직위는 진회와 같았으나 진회보다 앞서서 등재되었다. 인성이 서투르고 서예가 좋은 두 번째 서예가. 진회가 재상으로 임명되고, 후세에 서예가 송서로 지정되었다. 진회가 악비를 죽이고 영광을 위해 나라를 배반했기 때문에 진서가 송서로 바뀌었다. 제3위 조맹복은 서사사에 속하며 서예 실력도 일류이지만, 송태조의 11대 손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망한 후에는 증오심을 잊어버렸다. 그의 가문과 나라를 다스리고 원나라의 관료가 되었는데, 그 최고봉은 융로박사(興隆師)였기 때문에 그의 성격은 남들에게 잘 알려져 4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