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대의 봉건제도에 따라 당현종 이롱기가 명부에게 준 일급 부인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구오 부인 은 영씨, 양귀비의 셋째 언니, 양귀비가 총애를 받은 후 그녀의 세 언니는 모두 경성에 왔고, 당현종은 주택과 표지를 주었다.
1, 구오 부인은 포주 영락에서 태어나 초창기 촉중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배씨와 아내로 결혼했고, 배씨가 죽은 후 양귀비는 총애를 받아 경성으로 이사했다.
2, 구국부인은 양귀비의 총애를 받은 후 언니와 여동생과 함께 경성에 왔고, 천보 초년 당현종은 각각 구국부인, 한국부인, 진국부인으로 세 명을 봉했다.
3, 구국부인의 생활은 매우 사치스럽고, 집을 짓는 중당은 노동자들에게 약 200 만 위안의 임금을 주고, 지은 집은 웅장하고, 여행할 때 많은 보석 옥기를 버린다.
4, 구오 부인은 루산 반란 이후 경성에서 탈출하여 양귀비가 살해된 후 진창으로 도피해 붙잡힌 뒤 감옥에서 죽었다.